난치성 뇌전증 환자와 가족이 겪는 고통은 단순한 질병의 무게를 넘어, 삶 전체를 흔드는 심각한 사회·심리적 고충이다.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모르는 발작에 대한 극심한 불안감, 돌봄으로 인한 보호자의 신체적·정신적 탈진, 그리고 여전히 차가운 사회적 편견과 고립감이 그들의 속을 타들어 가게 만든다.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우크라이나, 이란, 태국, 대만, 싱가포르 등 전 세계 40개국에서 사용하는 신형 뇌심부(SEEG) 전극이 한국에만 없어서 중증 난치성 뇌전증 환자 3만명은 피가 마른다. 뇌의 어느 곳에나 전극을 삽입해서 치료할 수 있는 고주파 열응고 치료를 못하는 유일한 나라가 한국이다. 필자는 2년전부터 노력하고 있으나 아직 국내에 도입되지 않았다.
전 세계의 정보를 찾아서 식약처에 제출하여 신형 SEEG 전극은 6월에 겨우 희소의료기기로 지정되었으나 아직도 신속심사 중에 있다. 지금은 뇌 안에 뇌심부 SEEG 전극을 삽입하고 뇌파검사만 마친 후 치료를 못하고 그냥 빼고 있다. 이게 말이 되나. 머리를 모두 깍고 두개골에 수십개의 구멍을 뚫고 SEEG 전극을 삽입한 후 비디오뇌파검사실로 옮겨서 뇌전증 발작을 유발하고 뇌파를 기록하는데 뇌전증이 발생하는 뇌부위를 찾아도 치료하지 못하고 전극을 그냥 빼고 있다.
의사로서 정말 미칠 지경이다. 다른 나라들은 전극을 머리에서 빼기 전에 신형 SEEG 전극에 고주파(rdaiofrequency)를 가해서 뇌전증 병소를 제거한다. 그럼 치료율이 50-90%에 이른다. 뇌수술도 필요 없어진다. 더욱이 양쪽 뇌 2-3곳 이상 또는 운동중추에서 발작이 발생할 때에는 뇌전증 수술을 할 수 없고, 뇌의 너무 넓은 부위 또는 깊은 곳에서 발작이 발생할 때에도 수술이 어렵다. 하지만 SEEG 전극 고주파 열응고 치료는 이 모든 경우에 가능하다. 정말로 불치의 난치성 뇌전증을 치료할 수 있는 도구가 식약처 장벽에 막혀서 한국에만 없다.
중증 난치성 뇌전증 환자의 돌연사 위험은 일반인의 30-50배에 달한다. 매일 2-3명의 젊은 뇌전증 환자들이 뇌전증돌연사(SUDEP: sudden unexpected death in epilepsy)로 사망하고 있다. 고주파 열응고치료는 이들을 살릴 수 있다. 어린이 난치성 뇌전증에서 고주파 열응고 치료의 성공률은 70-90%에 이른다.
두개골을 열지도 않고 0.8mm 가는 SEEG 전극만 삽입하고 치료할 수 있다면 아이들이 고통을 받지 않고 얼마나 좋을까. 식약처는 뇌전증 어린이 부모의 입장에서 서서 신형 SEEG 전극의 신속 심사를 정말로 신속하게 해야 한다.
규정에 언제까지 되어있다고 시간을 끌면 안 된다. 이렇게 시급한 사안을 최대한 빨리 진행해야 한다. 어린이와 젊은 뇌전증 환자들이 죽느냐 사느냐 문제이다. 세월호 참사도 구조가 조금만 빨랐다면 수백명의 학생들을 구할 수 있었다. 선장의 무책임, 무능력과 이기심이 훨씬 큰 참사로 이어졌다. 세월호 사고가 발생하자마자 동작이 빠른 모든 학생들에게 구명복을 입게 하고 갑판으로 나오게 했다면 대부분 살았을 것이다.
식약처가 더 빠르게 움직인다면 수백-수천명의 중증 난치성 뇌전증 환자들을 구할 수 있다. 신형 SEEG 전극은 난치성 뇌전증을 치료를 할 수 있느냐 못하느냐를 결정하는 매우 중대하고 긴급한 사안이다. 신속 심사 대상들 중에 가장 급하다. 신속심사가 아니라 긴급 심사가 필요하다.
한국의 중증 난치성 뇌전증 어린이 부모들을 한국에 없는 뇌전증 응급약을 처방 받기 위하여 일본에 나가고 있다. 아이의 발작이 멈추지 않으면 부모의 마음은 타들어가고 아이가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과 공포에 사로 잡힌다. 갑작스런 심한 발작으로 반복되는 놀람, 불안, 공포는 부모들을 우울, 불안,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PTSD)으로 몰아간다. 온 가족이 고통을 받고 있다.
일본, 중국, 유럽은 뇌전증 국제 협력으로 한국의 난치성 뇌전증 환자들을 돕고 있다. 신형 SEEG 전극의 심속심사를 긴급심사로 전환하여 하루 빨리 한국의 중증 뇌전증 환자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식약처의 협조를 간곡하게 요청한다.
홍승봉 교수 성대의대 신경과 명예교수뇌전증지원센터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