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당국이 제약바이오의 '공시 체계'에 대한 전면 손질에 나선다.
기업가치 산정 근거와 연구개발(R&D) 이력을 보다 구체적으로 공개토록 하는 게 골자로, 금융당국은 "투자자가 신약개발의 가능성과 위험을 함께 판단할 수 있도록 정보의 비대칭을 줄이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31일 제약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어제(30일) '제약·바이오 공시 종합 개선방안(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이는 기업가치 산정의 근거와 기술이전 계약, R&D 이력 등 공시 기준을 대폭 손질하겠다는 것으로 업계는 "투자자 보호와 공시 투명성 강화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일률적인 기준 적용이 신약개발의 불확실성과 기업별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할 수 있다"면서 반복적인 제도 변경에 따른 혼란과 실무 부담을 우려하고 있다.
새 공시 기준 "기업가치 산정부터 보도자료까지 전면 손질"
이 개편은 임상시험 결과나 기술이전 계약 규모가 과도하게 해석되거나 공시와 보도자료에 서로 다른 정보가 담겨 투자자 혼란을 초래한 사례가 반복된 데 따른 조치로 보인다.
금감원은 기업별 공시 방식의 편차를 줄이고 투자자가 개발 현황과 위험요인을 한눈에 파악하도록 하겠다는 방침이다.
제약·바이오 공시 종합 개선 방향은 ▶기업공개(IPO) 기업가치 산정 기준 구체화 ▶기술이전 계약 공시의 세분화 ▶파이프라인 전 주기 이력 관리 ▶공시와 언론보도 간 일관성 강화 등이다.

IPO 공모가 산정 기준이 구체화가 요구됐다.
이에 따르면 기업은 예상 시장규모와 임상시험 성공확률, 허가·심사 리스크, 개발기간 및 비용 등 핵심 가정을 나눠 제시해야 한다. 시장 규모에는 치료율과 진단율, 경쟁 약물, 시장점유율 가정 등을 반영하고 임상 성공확률은 객관적인 논문이나 통계를 근거로 공개해야 한다.
IPO 기업 공모가 산정 시 기재 항목
개발기간과 비용 공개도 강화된다. 기업은 임상 단계별 일정 지연 가능성과 소요 비용, 자금조달 계획을 밝혀야 한다. 보유 유동자금과 공모자금만으로 개발을 완료할 수 있는지도 투자자가 판단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기술이전 계약 공시는 세분화된다. 상장사는 계약금과 개발 마일스톤, 허가·판매 마일스톤, 로열티를 구분해 공시해야 한다. 정기공시에는 파이프라인별 연구개발 이력관리 총괄표를 신설해 개발 완료와 중단-기술이전-허가, 판매 여부와 일정 지연 사유까지 관리토록 했다.
제약·바이오 언론보도 가이드라인도 마련된다.
보도자료 작성도 엄격해진다. 투자 판단에 중요한 정보는 언론보도보다 공시를 통해 먼저 공개해야 한다. 공시되지 않은 내용을 추가하거나 다른 내용을 담아서는 안 되며 객관적 근거가 부족한 과장 표현도 지양해야 한다. 배포 전 내부 승인도 권고했다.
금감원은 "개선방안을 바탕으로 마련한 가이드라인이 시장에 조기 정착할 수 있도록 시장 참여자를 대상으로 릴레이 설명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도 밝혔다.
이번 제도 개편안에 대해 업계의 반응은 부정적 이다.

약업계는 공시 투명성 강화 필요성엔 에는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실적보다 임상 성공과 기술이전 등 미래 성과가 기업가치에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계약 총액이나 일부 임상 데이터만 부각될 경우 투자자가 위험을 과소평가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다만 "계약금과 조건부 마일스톤을 구분하고 개발 중단·지연 이력까지 한눈에 확인하도록 한 조치는 시장 신뢰 회복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평가한다.
금감원의 이 같은 '규정(기준)' 강화는 몇 몇 제약사의 공시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올 초 삼천당제약은 미국 경구용 비만·당뇨 치료제 계약을 발표했지만, 계약 상대방과 구체적인 수익 구조를 공개하지 않아 계약 실체에 의문이 제기됐다.
최근에도 FDA(미 식품의약국)의 답변서 원문을 공개하지 않아 허가 절차와 추가 시험 여부를 둘러싼 불확실성을 키웠다.
코오롱티슈진은 최근 무릎 골관절염 치료제 미국 임상 3상 결과 발표 과정에서 공시와 보도자료 등에 서로 다른 수치를 기재해 혼선을 야기한 바 있었다.
그러나 새 제도에 대한 의문 제기도 있다. IPO 기업가치 산정에 적용하는 임상시험 성공확률은 파이프라인 특성따라 달라진다. 같은 임상 단계라도 적응증과 약물 기전, 임상 설계 등에 따라 성공 가능성에 차이가 날 수 있다. 단일 통계로 기업가치를 평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유전자치료제와 항체약물접합체(ADC) 등 새 모달리티나 희귀질환 치료제는 비교할 만한 과거 사례와 표본도 부족하다.
한편 업계는 당국의 잦은 규벙변경을 비판한다.
제약바이오 업계는 "공시 논란이 반복될 때마다 제도 개선을 했지만 실효성은 빈약했다"고 지적한다.
최근의 예를 보면 총 7차례의 굵직한 변화가 있었다. 평균적으로 2~3년마다 한 번꼴로 규제가 변경된 것 이다. 새 기준이 도입될 때마다 공시 양식과 내부 검토 절차, 회계·법무 시스템을 다시 정비해야 해 전담 인력이 부족한 중소 바이오기업에는 적지 않은 부담이 된다.
이 때문에 과도한 규제가 제약바이오 시장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KRX 헬스케어 지수는 지난해 7월 30일 4291.9포인트에서 이달 30일 3426.0포인트로 최근 1년간 20.2% 떨어졌다. 올해 2월 27일 기록한 기간 중 고점 5702.9포인트와 비교하면 39.9% 밀렸다.
이런 가운데 금리 인상까지 단행, 바이오·헬스케어 등 성장주를 중심으로 투자심리가 경색해지고 있다.
신약개발 바이오 기업 인제니아테라퓨틱스는 최근 공모가를 희망 범위 하단인 1만2000원으로 확정했다. 공모금액은 600억원으로 희망 범위 상단 기준보다 125억원 줄었고 예상 시가총액도 6000억원대로 낮췄다.
이는 바이오·헬스케어 기업 8곳이 전부 희망 공모가 범위 최상단에서 가격을 확정한 것과 대조적이다. 올해 레메디와 레몬헬스케어, 코스모로보틱스, 인벤테라, 리센스메디컬, 메쥬, 아이엠바이오로직스, 카나프테라퓨틱스 등이 기술특례를 통해 코스닥에 상장했는데 이들 기업 모두 희망 공모가 범위 최상단에서 공모가를 확정했다.
암튼 '강화'엔 아주 정밀한 연구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제약바이오업계는 "모두가 '바랍잡이'는 아닌데..."라며 정책에 신중이 필요"함을 지적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