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한양행이 오는 20일로 창업 100주년을 맞는다.
창업주 고 유일한 박사(1895~1971.3.11)가 남긴 업적은 웹툰, 뮤지컬 등을 통해 재조명되고 있다. 유일한 박사 삶과 철학을 담은 웹툰 'NEW 일한'은 최근 조회수 50만회를 넘어섰다.
독립운동가로서 일화를 담은 뮤지컬 '스윙데이즈_암호명 A'도 호평 속 예매율 상위권을 기록하고 있다.
11일 유한양행에 따르면 기업인이자, 독립운동가인 고 유일한 박사에 대해 제약업계는 특정 기업 창업주를 넘어 대한민국 제약산업 상징으로 볼 필요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약업계는 "제약산업 태동기에 국민 보건을 위한 민족 제약기업을 설립하고 정직한 기업 활동, 전 재산 사회환원을 실천했다는 점에서 업계가 기억하고 대표할 상징으로도 봐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의 제약80년사에 따르면 국내 제약바이오산업은 구한말 서양의약학 도입과 함께 싹트기 시작했다. 1897년 동화약방과 활명수 등장 이후 근대 의약품 제조가 태동했고, 일제강점기에는 유한양행과 삼성제약, 동아제약 등 민족 제약기업을 표방 등장했다.
100년전 대한민국 의약품 시장은 일본인 약업자 중심 이었다. 조선인 약업자들은 제도와 시장 양쪽에서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고, 의약품 제조와 판매 활동에도 제약이 많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민족 자본을 기반으로 한 유한양행이 등장, 한국 제약산업 초기 토대를 만들기 시작했다.
독립운동을 한 유일한 박사는 1926년 미국에서 귀국해 유한양행을 설립했다.
제약협회 80년사는 유한양행을 '최초의 서구식 제약기업'으로 적고있다.
유한양행은 구충제 헤노톨, 결핵치료제 네오톤, 피부연고제 안도린, 진통제 아스피린 등을 미국에서 수입·시판하며 일본인 독주에 제동을 걸었다(제약협 80년사).
유일한 박사는 일본을 거치지 않고 의약품을 독립적으로 직수입했다. 이는 서양의학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동시에 민족기업 토대를 굳혔다는 평가를 받는다.
고 유 박사가 당시 제약업을 택한 것은 국민 보건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유일한 박사는 미국에서 사업가로 성공, 귀국했지만, 국권을 빼앗긴 조국에서 국민이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받는 현실을 봐야 했다. 당시 국내에선 일본을 통한 비싼 약을 구하지 못해 치료 기회를 잃는 일이 적지 않았다고 유박사 회고록으 적고 있다.
유일한 박사는 건강한 국민만이 교육도 받을 수 있고, 나라도 찾을 수 있다고 봤다.
유 박사는 제약업은 단순한 사업이 아니라 국민이 질병에서 벗어나 스스로 설 수 있도록 돕는 기반을 봤다.
유 박사는 "제약산업은 수익 추구 산업이면서도 국민 생명과 건강에 직접 연결되는 공공성을 함께 지닌다. 필수의약품 안정 공급, 신약개발 혁신이 동시에 요구되는 것으로 봤다.
버들표와 정찰제, 정체성으로 삼은 신뢰와 정직
유한양행은 창업 초기부터 버들표를 기업 정체성으로 삼았다.
유일한 박사는 "초기 광고에서 성분을 밝히고 정찰제를 명시했다. 당시 불투명했던 의약품 유통 관행을 고려하면, 제약기업은 국민 건강을 지키는 주체라는 인식이 반영된 것"이라고 회고 했다.
1930년대 유한양행은 의약품 광고에서 질병 예방과 올바른 의약품 사용을 전달했다. 약 복용 전 전문가 진단을 권고한 광고 역시 단기적 수익 창출보다 약 오남용을 경계한 사례로 꼽힌다.
유일한 박사는 기업이익을 다시 사회로, 전재산 환원을 실천한 유일한 기업인이다.
유 박사는 유산을 기업 성과를 사적으로 소유하지 않았고, 그는 기업을 개인이나 가족 소유물이 아닌 사회적 기관으로 봤다. 주식회사 전환, 종업원 지주제, 기업공개, 전문경영인 체제 도입은 이 같은 철학이 경영 구조로 구현된 과정이었다.
그의 국가관, 사회관, 경제관은 전 재산의 서회기부로 완성됐다.
유 박사는 소유주식 전부인 14만941주를 한국사회 및 교육원조 신탁기금에 기증했다.
이 기금은 이후 유한재단으로 이어지며 장학과 교육, 사회복지 사업 기반이 됐다. 자녀에게 경영권이나 부를 물려주는 대신, 회사와 사회가 함께 성장하는 구조를 남긴 것이다.
기업에 대한 자신의 전재산을 사회로 환원, 기업 이익이 배당과 재원을 통해 재단과 학원으로 흐르고, 다시 장학·교육·복지사업으로 사회에 돌아가는 선순환이 가능해진 기업을 만든 것 이다.
유한재단을 만든 것은 "공익 사업 자체보다, 제약업계 태동기부터 함께한 상징적 인물이 성과를 개인에게 남기지 않고 사회로 환원했다"는 사실이다.
대한민국 제약바이오산업은 100년 세월을 지나면서 글로벌 신약 개발과 의약품 수출, 첨단바이오의약품 등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동시에 의약품 안정 공급, 약가 규제, 윤리경영과 사회적 책임 등 복합적인 과제도 안고 있다.
고 유일한 박사는 제약산업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 국민 건강과 산업 성장 사이에서 어떤 균형을 지향해야 하는지, 기업 성과를 사회와 어떻게 연결해야 하는지를 보여준 인물로 꼽힌다.
고 유일한 박사는 일제강점기 의약품 시장에서 조선인이 주도하는 근대적 제약기업을 세웠고, 국민 보건을 사업의 출발점으로 삼아 정직과 신뢰를 기업 운영 기준으로 세웠으며, 말년에는 기업 성과를 사회로 돌리는 구조까지를 남겼다.
유일한 박사는 단순히 성공한 창업자를 넘어, 제약산업이 지향해야 할 가치를 태동기부터 보여준 인물로 유한양행을 국민속에 심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