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게릭병은 의학적으로 ’근위축성측삭경화증(Amyotrophic Lateral Sclerosis, ALS)’이라 불리는 진행성 신경퇴행성질환이다. 뇌와 척수에서 근육의 움직임을 조절하는 운동신경세포가 점차 손상되면서 팔다리의 근력이 약해지고 말하기와 삼키기, 호흡 기능에 장애가 발생할 수 있다.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선수 루게릭이 이 병을 진단받은 이후 ’루게릭병’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다

루게릭병의 초기 증상은 환자마다 다양하다. 한쪽 손에 힘이 빠져 단추를 잠그거나 젓가락질이 어려워지고 발목에 힘이 떨어져 자주 넘어지거나 계단을 오르기 힘들어질 수 있다. 근육이 가늘어지거나 피부 아래에서 근육이 꿈틀거리는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일부 환자는 발음이 어눌해지고 음식물을 삼키기 어려운 증상을 호소하며 드물게는 호흡곤란이 초기부터 나타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증상이 초기에는 비특이적이라는 점이다. 손발의 힘 빠짐을 노화나 피로, 목·허리디스크, 관절질환으로 오인하기 쉽고 발음이 어눌해지면 뇌졸중과 같은 다른 신경계질환을 먼저 의심하기도 한다. 증상이 서서히 진행되기 때문에 환자 스스로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병원을 찾는 시기가 늦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실제로 루게릭병은 초기 증상이 발생한 뒤 최종 진단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 일부 연구에 따르면, 루게릭병의 첫 증상 발생 후 정확한 진단까지 평균 1년가량이 소요되는 것으로 보고된다. 증상의 형태가 다양하고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다른 신경계·근육질환을 충분히 감별해야 하기 때문이다.
루게릭병은 한 가지 검사만으로 확진할 수 있는 질환이 아니다. 환자의 증상과 진행 양상을 확인하고 신경학적 진찰과 근전도검사, 신경전도검사, 혈액검사, 뇌·척추 자기공명영상(MRI) 등을 종합해 진단한다. 환자에 따라 유전자검사, 호흡기능검사, 삼킴기능평가 등이 추가로 필요할 수 있다.
고려대학교 안산병원 신경과 백설희 교수는 “조기 진단은 단순히 병명을 빨리 확인한다는 의미를 넘어선다”며 “진단이 늦어지면 약물치료와 영양·호흡 관리, 재활치료를 시작할 시기도 함께 늦어질 수 있으므로 초기 증상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루게릭병은 아직 완치가 어려운 희귀난치성질환이다. 현재 국내에서 사용 가능한 치료제는 리루졸(Riluzole)과 에다라본(Edaravone)이 있으며 최근에는 SOD1 유전자 변이가 확인된 일부 환자를 대상으로 한 표적 치료제 토퍼센(Tofersen)도 도입됐다. 다만, 치료제의 적용 여부는 환자의 유전적 특성과 전신 상태, 질병 진행 단계 등을 고려해 전문의가 판단해야 한다.
루게릭병 치료에서 약물치료만큼 중요한 것이 다학제적 관리다. 질환이 진행되면 운동 기능뿐 아니라 호흡, 영양, 삼킴, 의사소통, 정서적 문제 등 여러 영역에서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근력과 보행 기능을 유지하기 위한 재활치료, 체중 감소와 흡인성 폐렴을 예방하기 위한 영양·삼킴 관리, 호흡근 약화를 조기에 확인하기 위한 호흡기능평가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필요한 경우 보조기나 이동 보조기기, 비침습적 환기치료, 기침유발기, 위루관(복부를 통해 위로 직접 영양을 공급받을 수 있도록 삽입하는 관), 보완대체의사소통기기 등을 적절한 시점에 적용할 수 있다. 이러한 치료는 환자가 독립적인 일상생활을 최대한 오래 유지하고 치료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편과 합병증을 줄이는 데 도움을 준다. 보호자의 돌봄 부담과 심리적 어려움을 함께 살피고 향후 치료 방향을 환자와 가족이 충분히 논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도 중요하다.
백설희 교수는 “루게릭병은 한 가지 약이나 한 진료과의 치료만으로 관리하기 어려운 질환”이라며 “진단 초기부터 호흡, 영양, 운동, 의사소통 기능을 체계적으로 평가하고 필요한 치료를 적절한 시점에 제공하는 다학제적 접근이 환자의 삶의 질을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근력 저하나 발음·삼킴 장애가 반복되거나 시간이 지날수록 증상이 점차 악화된다면 단순한 노화로 생각하지 말고 신경과 전문의의 진료를 받아야 한다”며 “정확한 진단을 바탕으로 치료와 관리를 조기에 시작하는 것이 환자와 가족 모두에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