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의 소명의식 운운하기 전에 실패한 군의료 인력정책부터 반성하라

장석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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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의협, 유영하 의원은 군의관·공보의 수급 붕괴의 책임을 젊은 의사들에게 전가하는 발언을 즉각 철회하라

 국민의힘 유영하 의원은 지난 8월 31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군의관·공중보건의사 복무기간 단축 논의와 관련하여 “의사가 소명의식을 내팽개치고 돈을 벌기 위해 복무기간을 단축해 달라는 것”이라는 취지로 발언했다. 나아가 이러한 요구를 “국가가 받아주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는 이러한 발언이 현재 군의관·공보의 수급 붕괴의 원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국가의 잘못된 제도 설계와 정책 실패의 책임을 젊은 의사들의 직업윤리 문제로 전가하는 매우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판단하며 강한 유감을 표한다.

병의협 로고
병의협 로고

군의관과 공중보건의(이하 공보의)가 사라지는 이유는 ‘소명의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제도가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재의 군의관·공보의 수급 위기는 갑자기 발생한 문제가 아니다. 공보의 신규 편입 규모는 2015~2022년 연간 500~800명 수준에서 2024년 249명, 2025년 250명으로 감소한 데 이어 2026년에는 불과 98명까지 추락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의대생의 현역병 입대가 2020년 150명에서 2024년 1,363명, 2025년 8월까지 무려 2,838명으로 폭증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앞으로 군의관·공보의 공급 감소가 더욱 가속화될 것임을 의미한다 

그 원인은 명확하다. 현역병은 18~21개월을 복무하는 반면 군의관과 공보의는 군사교육 기간을 제외하고도 3년을 복무해야 한다. 과거에는 이러한 복무기간 차이를 상쇄할 정도의 처우상 이점이 있었지만, 현역병 처우가 크게 개선되면서 그 차이는 사실상 사라졌다. 여기에 의과대학 내 여학생 비율 증가에 따른 병역대상 의사 감소와 2024년 전 정권의 의료농단 사건 이후 의학교육 및 전공의 수련의 불확실성까지 겹쳤다. 

이러한 상황에서 젊은 의사들이 18개월가량의 현역병 복무를 선택하는 것은 ‘소명의식의 상실’이 아니라 국가가 만들어 놓은 제도적 유인구조에 따른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이다. 국가가 한쪽에는 18개월의 선택지를, 다른 쪽에는 사실상 3년이 넘는 선택지를 만들어 놓고 젊은 의사들에게 후자를 선택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가? 

“복무기간을 줄이면 군의관이 부족해진다”는 주장은 문제의 핵심을 거꾸로 보고 있다. 유영하 의원은 복무기간을 급격히 단축하면 군의관 숫자를 어떻게 보충할 것이냐고 우려했다. 그러나 지금 물어야 할 질문은 정반대다. 복무기간을 현실화하지 않았을 때 앞으로 누가 군의관과 공보의로 복무할 것인가? 

의대 재학생의 99.0%가 군의관·공보의 지원 감소의 원인으로 현역병 대비 긴 복무기간을 지적하고, 복무기간이 24개월로 단축될 경우 공보의 복무 의향이 94.7%, 군의관 복무 의향이 92.2%까지 상승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온 상황에서, 현재의 복무기간을 고수하는 것이야 말로 군의관·공보의 공급체계를 붕괴시키는 길이다. 

더욱이 국방부가 주장하는 ‘필요 군의관 숫자’ 자체가 과연 적정한지도 따져봐야 한다. 현재 군의료 현장에서는 안과 전문의가 세극등 현미경조차 없는 부대에 배치되고,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X-ray 장비조차 없는 곳에서 일반진료를 하며, 외과 전문의가 수술과 완전히 단절된 환경에서 근무하는 비효율적인 인력 배치가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비효율적 편제를 그대로 유지한 채 “현재 인원을 유지하려면 복무기간을 줄일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정책의 앞뒤가 뒤바뀐 것이다. 

먼저 불필요한 군의관 편제를 줄이고, 의료인력의 전문성에 맞게 군의료체계를 개편한 다음 정말 필요한 군의관 숫자가 몇 명인지를 다시 산정해야 한다. 의사에게만 ‘소명의식’을 요구하며 국가의 책임을 면제해서는 안 된다. 유영하 의원은 “우리 사회에서 선생님 호칭은 의사밖에 없다”며 의사의 소명의식을 강조했다. 그러나 의사의 직업윤리와 국가의 병역제도 설계는 전혀 다른 문제다. 의사에게 소명의식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다른 국민보다 현저히 긴 병역의무를 감수하도록 요구하고, 이를 거부하면 돈을 좇는 사람으로 비난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더구나 현재의 군의관·공보의 수급 위기는 의료계가 오랫동안 예견하고 제도 개선을 요구해 왔음에도 정부가 병역대체 인력을 값싼 의료인력처럼 활용하면서 구조개혁을 미뤄온 결과다. 의과대학 여학생 증가, 의학전문대학원 도입, 현역병 처우 개선 등 공급 감소 요인은 이미 오래전부터 예측 가능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근본적인 개혁을 외면했다. 정책 실패의 책임을 젊은 의사들의 소명의식 부족으로 돌리는 것은 책임 있는 정치인의 자세가 아니다. 

필요한 것은 소명의식의 강조가 아니라 군의료·공공의료 시스템의 구조개혁이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는 단순히 군의관·공보의 복무기간만 24개월로 줄이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복무기간 현실화와 동시에 군의료와 지역공공의료 체계 자체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군의관과 공보의의 불필요한 행정·비진료 업무를 대폭 축소하고, 군사작전상 반드시 필요한 군의관을 제외한 인력의 운영체계를 재설계해야 한다. 군의료와 지역공공의료의 중복된 자원과 인력을 통합하고 민간의료기관과의 협력체계를 구축하여 적은 인력으로도 더 효율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병역의무를 이용해 의사를 확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기존 군장학생 제도 등을 확대·개편하여 장학금과 합리적인 처우, 경력개발을 제공하는 ‘국방 트랙’과 ‘지역 트랙’​을 구축하고 자발적으로 군의료와 공공의료를 선택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강제로 오래 복무시키는 것이 군의료를 지키는 길이 아니다. 군의관으로 복무할 만한 가치가 있는 제도를 만드는 것이 국가가 해야 할 일이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는 유영하 의원에게 요구한다. 군의관·공보의 수급 붕괴라는 국가 정책의 실패를 젊은 의사들의 ‘돈’과 ‘소명의식’ 문제로 치환한 발언을 철회하고 사과하라. 그리고 국회와 정부는 소명의식과 희생 강요에서 벗어나 복무기간 현실화와 함께 군의료·지역공공의료의 통합 운영, 비효율적 군의관 편제 개편, 국방·지역 트랙 구축 및 획기적인 처우 개선을 포함한 근본적인 제도개혁에 즉각 착수하라. 

젊은 의사들의 희생을 강요하여 유지되는 제도는 지속 가능한 제도가 아니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은 의사의 소명의식을 시험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들이 합리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군의료 제도를 만드는 것임을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이다.

 2026년 9월 3일 대한병원의사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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