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의대 교수 비대위 국민께 드리는 입장문(대 정부 요구사항 포함)

장석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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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먼저 장기간 지속되는 의료 사태 속에 불편과 불안감을 겪고 계실 국민, 환자 여러분께 깊은 위로를 드립니다. 

  

2.최근 보건복지부 행정지도 아래 일부 수련병원에서는 '전공의 일괄 사직처리'를 시행하였고, 그 중 일부 병원에서는 하반기 전공의 모집인원 신청을 적극 추진하였습니다. 그 과정 중에 일부 병원에서 당사자인 전공의들의 의견이 존중받지 못한 채 6월 이후로 사직서 수리시점이 결정된 것은 매우 아쉽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또한 결원에 대한 하반기 전공의 모집 신청에 있어서도 진료과 교수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채 모집인원이 신청된 것은 보건복지부의 강압적 행정과 무관치 않아 보입니다. 

 

하지만 이런 조치들에도 불구하고 보건복지부 담당자들조차 전공의들의 병원 복귀 가능성은 매우 낮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또한 의대 학생들의 경우에도 교육부가 의대 학사 탄력 운영 가이드라인 대책을 내놓았지만, 학생들의 교실 복귀 가능성은 매우 낮은 상황입니다. 보건복지부와 교육부가 몇 달 동안 내놓았던 대책들은 사태를 해결하지도 못하였고, 전공의와 의대생의 신뢰를 얻지도 못하였습니다.

 

3.우리 나라는 OECD 국가들 중에서도 최고의 의료 수준과 서비스를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필수의료의 근간인 수련병원, 상급종합병원들이 존립조차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지역의료의 대들보인 지역거점 대학병원들의 위기는 실로 심각한 지경입니다. 불과 몇 개월 만에 수련병원 진료 현장, 의과대학 수업 현장은 풍전등화 상태에 몰렸습니다. 당장 내년도 전문의, 의사 배출이 극소수에 그치는 전대미문의 재앙적 상황이 의료계에 불어 닥칠 것으로 보입니다.

  

4.현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선 이탈한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이 병원과 교실로 돌아가면 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런데, 그들이 병원과 교실을 떠난 이유를 진지하게 알아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전공의, 의대생의 저항은 결코 집단 이기주의가 아닙니다. 국민 여러분! 의료정책, 특히 의대정원 관련, 필수 지역 의료 관련 정책들이 한번 잘못 시행되면, 그 부작용에 따른 의료서비스 질적 저하의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국민과 환자들이 감당해야 합니다. 

 

정부가 추진 중인 의대증원 정책은 청문회에서 만천하에 드러난 것처럼 근거, 논의, 준비 셋 중 어느 것도 없었던 3무 정책이었습니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본인의 개인 판단으로 결정하였다는데, 이를 믿는 국민이 몇 명이나 있습니까? 도대체 이렇게 과도하고 급격한 의대증원을 결정한 사람은 누구인가요?

 

5.3무 의대증원 정책에 항의하는 의대생과 전공의, 의대교수의 목소리가 국민 여러분께 제대로 이르지 못하고 있음이 너무나도 안타깝습니다. 밥그릇 싸움이라는 왜곡된 프레임으로 의사들과 예비 의사들을 매도하고 각종 편법적인 명령과 조치를 통해 대충 봉합해보려는 보건복지부와 교육부의 시도는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습니다. 근본적 해결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결국 수련병원 전공의 양성 시스템이 무너지고, 한국 필수의료, 지역의료는 퇴보하게 될 것입니다. 

 

한국 의학교육은 짧은 기간에 후진국 수준으로 떨어지고, 수준 미달의 의사를 배출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저임금 중노동의 전공의 인력으로 유지되어 왔던 수련병원들이 갑자기 ‘전문의 중심병원’이 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전공의 수련 시스템이 무너진 상황에서는 제대로 전문의 양성배출조차 안될 것입니다.

 

6.의대정원 증원이 의료개혁의 한가지 수단으로 고려될 수는 있다 쳐도 그것이 의료개혁 그 자체가 될 수 없음은 삼척동자도 알 만한 일입니다. 한번에 의대정원의 65%, 50%를 늘리고 심지어 어떤 대학에서는 한번에 49명에서 200명으로 151명을 늘리겠다는 한국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을 전해 들은 외국 의사들의 까무러칠 듯 놀란 표정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저체중 아이에게 한꺼번에 밥을 많이 먹이면 되겠습니까? 먹을 수 있는 만큼 꾸준히 잘 먹게 해서 체중을 불려야 한다는 지난 16일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의 지적은 너무나도 상식적 발언입니다. 

 

49명 정원 여객기에 200명을 태운 후 무조건 이륙 명령이 내려지면 그대로 따라야 합니까? 한꺼번에 정원을 늘려서 학생 교육과 전공의 수련이 제대로 될 수 있을지, 증원된 의사들이 필수 의료 영역이나 지방에 갈 수 있는지 등등을 차분하게 따져봐야 한다는 보건복지위원장의 말에 국민 여러분께서 모두 공감하실 것입니다. 또한 그 아이의 체중을 늘리는 것이 맞을지, 지금 상태로 충분할지, 그 아이가 어른이 되면 오히려 과체중이 될 우려는 없을지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봐야 하는 것 아닐까요? 낙수 효과를 통해 필수 의료와 지역 의료에 종사할 의사들을 늘릴 수 있다는 건 희망사항에 불과합니다.

 

7.정원초과의 부작용과 폐해를 누구보다 절실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이 바로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입니다. 정부의 잘못된 의료 정책에 젊은 의사들과 예비 의사들은 본인들의 진로까지 위태로워진 상황에서도 여전히 단호하고 결연하게 항의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균관의대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전공의와 의대생의 입장을 여전히 존중하고 강력히 지지합니다. 의대 교수들이 현장을 지키고 있는 것은 정부의 의료 정책에 동의해서가 아니라 차마 환자 곁을 떠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8.꼬일 대로 꼬인 실타래를 풀어야 합니다. 9월 대입 수시 접수가 시작되고 나면 사태 해결은 더욱 어려워질 것입니다. 백약이 무효라는 자괴감에 빠져 있을 보건복지부, 교육부 공무원들은 하루라도 빨리 현 사태를 해결하고 의료 정상화를 가능케 할 수 있는 한가지 특효약을 사용하기 바랍니다. 그 묘책은 바로 2025년도 의대 증원을 비롯하여 그동안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해온 의료 정책들을 2월 6일 이전으로 되돌리고 의정 논의, 합의를 거쳐 합리적 행정을 펼치는 것입니다. 2천명 증원이라는 과제에 집착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되돌아가야 합니다. 

 

누군가가 2천명 증원, 1천 5백명 증원에서 절대 물러설 수 없다고 배수진을 쳤던 바람에 실타래가 꼬일 대로 꼬였습니다. 우리 국민이 바라는 것은 누가 이기고 지는 싸움이 아니라, 모두가 상생하는 행정일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무모한 의대 증원을 취소하고 신뢰 관계를 회복한 후 의정 협의를 시작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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