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의료사고 심의제도 도입, 책임보험 의무화, 조정제도 개선 등을 포함한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정부는 이를 필수의료 현장의 형사 부담을 완화하고 환자 보호를 강화하는 균형 잡힌 입법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본 개정안은 그 취지와 달리, 필수의료 현장의 실제 진료 환경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채 의료인에게 과도한 요건을 부과하고 있으며, 형사법 및 민법의 기본 원리와 긴장 관계에 놓일 수 있는 구조적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마취통증의학과 의사는 전신마취, 소아마취, 산과마취, 응급마취 등 다양한 상황에서 환자의 생명 유지와 직결된 의료행위를 수행한다. 특히 의식이 없는 환자, 의사결정이 제한된 산모, 급박한 응급 상황에서의 처치는 사후적으로 단순한 기준으로 평가하기 어려운 고도의 전문적 판단을 요구한다. 이러한 특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제도 설계는 필수의료 전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1. 형사특례의 구조와 핵심 문제점
개정안은 임의적 형 감면과 기소제한 특례라는 두 가지 형사특례를 도입하고 있다. 이들 제도는 공통적으로 중대한 과실이 없고, 책임보험에 가입되어 있으며, 사고 후 설명의무가 이행된 경우 등을 전제로 고려되며, 특히 기소제한 특례는 손해배상금 전액 지급을 추가 요건으로 요구한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는 형사책임 판단에 있어 행위 당시의 위법성과 과실뿐 아니라 사후적 요건의 충족 여부를 결합시키는 특징을 가진다. 형사법은 행위자 자신의 행위와 고의 또는 과실을 중심으로 책임을 판단하는 책임주의를 기본 원리로 한다는 점에서, 보험 가입 여부, 설명의무 이행, 손해배상 여부 등이 형사절차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는 책임주의를 기본 원리로 하는 형사법 체계와 충돌하다.
2. 중대한 과실 판단 기준의 문제 및 마취 임상 현실 간의 괴리
개정안은 “약물 투여 전 필수적인 과민반응 검사 미실시”를 중대한 과실의 한 유형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임상 표준에서는 모든 마취 약물에 대한 사전 검사가 권고되지 않으며, 일부 약물은 예측이 매우 제한적이거나 표준화된 검사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응급 상황에서는 이러한 검사를 일률적으로 시행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
또한 소아 및 산모 마취는 생리학적 특성과 임상 상황의 복잡성으로 인해 성인보다 높은 위험과 난이도를 가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수의료의 정의가 긴급성 중심으로 해석될 경우, 선택적 소아 수술이나 특정 산과 상황이 특례 적용 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있다. 이는 오히려 위험도가 높은 영역에서 법적 보호가 제한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응급 및 중증 환자 마취에서는 충분한 설명과 동의, 검사, 보험 요건, 사후 설명 및 배상 요건을 동시에 충족하기 어려운 상황이 빈번하다. 생명 구호를 위한 즉각적인 의료행위가 사후적으로 이러한 요건을 기준으로 평가될 경우, 임상 현실과 제도 간 괴리가 발생할 수 있다.
3. 책임보험 가입 요건의 문제
특히 손해배상 전액 지급을 기소제한의 요건으로 설정한 것은, 민사적 책임의 유무와 범위가 확정되기 이전 단계에서 배상을 선행하도록 유도하는 효과를 가질 수 있다. 이는 민법상 과실책임 원칙과 긴장 관계에 놓일 수 있으며, 형사책임과 민사책임의 판단 시점이 분리되지 않은 채 결합되는 구조적 문제를 내포한다.
또한, 개정안은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을 경우에만 공소 제기를 제한하는 구조로, 처벌 의사가 유지되면 형사절차가 그대로 진행된다. 의료분쟁에서 형사 고소가 민사 협상과 병행되는 현실을 고려할 때, 이러한 구조는 형사절차가 협상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로 인해 의료인은 형사 리스크에서 안정적으로 벗어나기 어려우며, 형사특례의 법적 안정성 확보 기능이 제한될 수 있다.나아가 이러한 구조는 경제적 여건에 따라 배상 가능성이 달라질 경우 형사책임의 결과에도 차이가 발생할 수 있는 불평등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다수의 의료 선진국은 무과실 의료사고에 대해 과실 입증 없이 공적 보험 또는 사회적 보상 시스템을 통해 환자를 보상하고, 민·형사 분쟁을 최소화하는 구조를 운영하고 있다. 뉴질랜드, 스웨덴, 핀란드는 각각 공적 또는 보험 기반 시스템을 통해 의료사고 위험을 사회적으로 분산시키며, 의료인 개인에 대한 법적 부담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 있다. 반면 이번 개정안은 조건부 형사특례를 전제로 하여 배상과 보험 부담을 의료인 및 의료기관에 집중시키고, 행정 심의 절차 중심으로 분쟁을 관리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이로 인해 공적 보상 시스템을 통한 위험 분산보다는 개인 책임 중심의 부담 구조가 강화되는 측면이 있다.
4. 사고 후 설명의무의 문제
사고 발생 후 7일 내 설명의무는 원인 규명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마취사고의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수술 중 심정지의 원인이 마취인지, 수술인지, 기저질환인지는 수 주에서 수 개월의 분석이 필요하다. 원인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진 설명은 이후 수사나 분쟁 과정에서 불리하게 해석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우며, 제도적으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5. 의료사고심의위원회의 구조적 문제
개정안은 의료사고 관련 수사를 지원하기 위한 의료사고심의위원회를 설치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수사 지원이라는 목적과 중립적 감정 기능 사이의 균형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며, 의료 전문 인력이 단 25%만 구성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단기간 내 과실 여부를 판단하도록 설계된 점은 전문성과 중립성 측면에서 우려를 낳을 수 있다.
또한 위원회의 판단은 법적 구속력이 없음에도 수사 및 기소 여부에 실질적 영향을 미칠 수 있어, 행정기관 단계에서 책임 판단이 선행되는 구조에 대한 절차적 정당성 검토가 필요하다. 의견진술권 보장 및 불복 절차가 명확히 규정되어 있지 않다는 점 역시 적법절차 원칙과의 관계에서 보완이 요구된다.
6. 결론 및 요구사항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은 필수의료 보호라는 입법 취지에도 불구하고, 임상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요건 설계, 형사법 및 민법 원리와의 긴장 관계, 그리고 심의위원회의 전문성·중립성 문제 등 다수의 구조적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특히 마취통증의학과 의사가 주로 다루는 응급·소아·산모·중증 환자 영역에서 이러한 문제는 더욱 두드러진다.
이에 대한마취통증의학회는 무과실 의료사고에 대한 공적 보상체계 마련, 기소제한 특례의 요건 구조에 대한 재검토, 중대한 과실 판단 기준의 구체화, 사고 후 설명의무의 합리적 조정 및 보호 범위 확대, 그리고 의료사고심의위원회의 전문성 강화와 절차적 권리 보장을 요구한다.
마취통증의학과 의사는 환자의 생명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키는 의료인으로 수술실에서 환자의 의식이 사라지는 순간부터 깨어나는 순간까지 곁을 지킨다. 울고 있는 소아, 진통 중인 산모, 응급으로 실려 온 외상 환자 등 그 어떤 상황에서도 환자의 생명징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우리의 본질적인 역할이다. 이처럼 마취통증의학과 의사는 환자가 가장 취약한 순간, 수술실이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 생명을 직접적으로 책임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요구되는 것은 신속하고 정확한 의학적 판단과 즉각적인 처치이며, 사후적으로 평가되는 법적 요건의 충족 여부가 그 판단을 대신할 수는 없다.
이러한 의료행위가 법적 불확실성과 공포 속에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의료인이 형사적 위험에 대한 과도한 우려 없이 오직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데 집중할 수 있도록, 안정적인 진료 환경과 명확한 법적 안전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