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협, 전국의사노조 준비위원회 출범 입장문

장석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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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의사들도 노동3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있어야 전국 곳곳에 의사노조를 만들고, 돕고, 연결하겠습니다

1. 의사노조 설립의 당위성 

지난 수년간 대한민국 의료계는 유례없는 격변을 겪었습니다. 정부의 의료정책과 의료기관의 경영 결정은 의사의 근로조건뿐 아니라 진료환경과 환자안전에까지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 결정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의사들은 자신들의 근로조건과 진료환경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제대로 된 협상력을 행사하지 못해 왔습니다. 

특히 봉직의·전공의·교수 등 피고용 의사들은 법적으로 명백한 근로자임에도 불구하고, 헌법과 노동관계법이 보장하는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이라는 노동3권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습니다. 이는 국가가 철저히 통제하는 의료 시스템에서 요양기관 당연지정제라는 족쇄에 묶여 건강보험 진료를 강제당하는 노동자인 개원의에게도 해당되는 문제입니다. 

그동안 의사들은 정부의 일방적인 의료정책에는 개인 또는 직능단체를 통해 대응하고, 의료기관의 부당한 근로조건과 인력운영에는 개별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왔습니다. 그러나 일부 단체와 개인이 거대한 정부와 의료기관을 상대로 대등하게 협상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이제 이러한 구조를 바꾸어야 합니다.

의사에게도 노동3권은 권리입니다. 그리고 그 권리는 선언되어 있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조직을 통해 실제로 행사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권리가 됩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역시 노동조합의 목적을 근로자의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보장하고, 근로조건의 유지·개선과 경제적·사회적 지위 향상을 도모하는 데 두고 있습니다. 

2. 의사들의 노조 조직화 요구 

대한병원의사협의회가 의사 58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의사노조 조직화와 역할에 대한 대회원 인식 설문조사」 결과는 지금 의료계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응답자의 96.9%가 의사노조 조직화가 필요하다고 답했고, 전국의사노조가 창설될 경우 94.5%가 가입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현재 실제 의사노조 가입률은 6.4%에 불과했습니다. 필요성에 대한 인식과 현실의 조직률 사이에 약 90% 포인트에 달하는 거대한 간극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직역별로도 봉직의 노조가 필요하다는 응답은 88.0%, 전공의 78.8%, 교수 70.2%, 개원의 68.8%에 달했습니다. 

이는 의사들이 노동조합을 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노조를 만들고 싶지만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모르고, 법률과 노무 문제를 감당하기 어렵고, 병원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불이익을 우려하여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의사들의 요구는 이미 충분합니다. 문제는 조직입니다. 

따라서 지금 의료계에 필요한 것은 단순히 ‘전국의사노조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또 하나의 조직이 아닙니다. 의사들이 실제로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조직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것이 전국의사노조 준비위원회를 출범시키는 가장 중요한 이유입니다. 

3. 전국의사노조 준비위원회의 역할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병원별·직역별 의사노조의 토대는 이미 형성되고 있다. 2017년 동남권원자력의학원 의사노조를 시작으로 공공병원 의사노조, 의과대학 교수노조 등이 등장했고, 전국전공의노동조합으로까지 조직화가 확대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몇 개의 의사노조가 만들어졌다고 해서 전국의사노조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한 병원에서 하나의 의사노조가 만들어지고, 또 다른 병원에서 새로운 노조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개원의들을 하나로 모아 노조화의 첫 발을 내딛는 조직도 필요합니다. 즉, 봉직의·전공의·교수 그리고 개원의 등 각각의 직역에서 조직이 확대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수많은 노조들이 서로 경험과 정보를 공유하고 연대하면서 점차 하나의 전국적인 조직체계로 발전해야 합니다. 

따라서 전국의사노조 준비위원회는 전국 곳곳에 더 많은 의사 노동조합을 만들어 정착시키고, 의사노조들 간 연대를 강화할 것입니다. 또한, 구성원들과 민주적인 논의를 통해 전국 단위 노동조합을 조직해 나갈 것입니다. 

4. 전국의사노조 준비위원회 실행 계획 

우리는 ‘의사노조 설립지원센터’를 만들겠습니다. 전국의사노조 준비위원회는 선언만 하는 조직이 아니라 실제로 노조를 만들어 내는 실무조직이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준비위원회의 핵심 사업으로 「의사노조 설립지원센터」를 운영하겠습니다. 

노조 설립을 원하는 의사라면 누구든 익명 또는 실명으로 준비위원회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초기 상담에서부터 발기인 모집, 조직형태 결정, 규약 작성, 설립총회, 설립신고, 사용자 통보와 최초 단체교섭에 이르기까지 노동조합 설립의 전 과정을 변호사·노무사 및 기존 의사노조 관계자들이 지원할 것입니다.

전국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 특히 공공병원 및 대학병원을 중심으로 「1병원 1의사노조」 운동도 추진하겠습니다. 지역별 설명회를 열고, 실제 의사노조의 설립과 교섭 성공사례를 공유하며, 노조 설립을 희망하는 병원에는 맞춤형 조직화 지원을 제공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단순히 노조를 만드는 것에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노동전문 변호사와 노무사 등을 중심으로 공동 법률·노무 지원체계를 구축하여 단체교섭, 단체협약, 부당노동행위, 교섭창구 단일화, 노동위원회 구제절차, 근로시간, 당직비, 보수, 휴가, 적정인력과 필수유지업무 등에 대한 전문적인 지원을 제공할 것입니다.

개원의의 조직화 가능성도 열어가겠습니다. 준비위원회는 봉직의·전공의·교수의 조직화에만 머무르지 않을 것입니다.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아래에서 사실상 국가가 정한 수가와 급여기준, 심사기준에 따라 진료할 수밖에 없는 개원의들이 노동조합 또는 이에 준하는 집단적 교섭권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법적·제도적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최종적으로 민주노총 화물연대와 같은 개원의 노조 조직을 설립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기존 의사노조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존중하면서 더 강하게 연결하겠습니다. 준비위원회의 또 하나의 중요한 역할은 이미 만들어져 활동하고 있는 의사노조들을 연결하는 것입니다. 각 병원과 직역의 노조가 가진 독립성과 자율성은 최대한 존중할 것입니다. 동시에 개별 노조가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법률·노무 문제와 교섭 경험을 공유하고, 공동 정책을 개발하며, 필요한 경우 함께 대응할 수 있는 전국적인 의사노조 네트워크를 만들 것입니다.

초기부터 무리하게 하나의 조직으로 통합하기보다는 조직률을 높이고, 공동의제를 만들어 실제 성과를 축적하면서 단계적으로 전국적 연대체로 발전하는 것이 현실적인 전략입니다. 관련 실무 연구에서도 병원별·직역별 조직률 제고와 연대 네트워크 구축을 기반으로, 중기적으로 전국의사노조협의회나 산별·연합 형태로 발전하고 장기적으로 대정부 협상 주체로 성장하는 단계적 로드맵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5. 전국의사노조의 올바른 방향 

의사의 노동권은 결국 환자의 안전과 의료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의사노조가 단순히 의사의 임금과 처우만을 위한 조직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과도한 근로시간, 불합리한 당직체계, 부족한 의료인력, 일방적인 진료과 폐쇄와 인력감축은 의사의 근로조건 문제인 동시에 환자의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의사가 안전하게 진료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의학적 원칙과 양심에 따라 진료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정부와 의료기관의 일방적인 결정으로부터 진료의 전문성과 자율성을 지켜내는 것은 결국 국민이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만드는 일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제 의사를 정책의 일방적인 집행 대상이 아니라 의료제도를 함께 결정하는 대등한 협상 주체로 인정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해외에서는 이미 의사노조가 의료제도의 중요한 협상 주체로 기능하는 사례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병원의사뿐 아니라 개원의들도 다양한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있으며, 개원의 의사노조들은 건강보험기금 측과 전국 단위 협약에 참여하여 진료비뿐 아니라 의료접근성 및 의료정책의 방향까지 협의하고 있습니다. 

이제 의사들도 스스로 조직해야 합니다. 지난 수년의 의료정책 혼란은 우리에게 분명한 교훈을 남겼습니다. 조직되지 않은 개인은 아무리 전문가라 하더라도 거대한 정부와 의료기관을 상대로 대등한 협상을 하기 어렵다는 사실 말입니다. 

이제 누군가가 대신 우리의 권리를 지켜줄 것이라고 기대해서도 안 됩니다.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는 전문가이자 의료의 당사자로서 목소리를 내고, 의료기관의 부당한 근로조건에는 근로자로서 당당하게 교섭하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의료환경에 대해서는 의사들이 집단적으로 개선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출발점이 노동조합입니다. 전국의사노조 준비위원회는 이미 만들어진 몇몇 의사노조만을 위한 조직이 아닙니다. 노조를 만들고 싶지만 방법을 모르는 의사, 혼자 나서기 두려운 의사, 병원의 불이익이 걱정되어 시작하지 못했던 의사들을 위한 조직입니다. 

한 병원에서 하나의 의사노조가 만들어지고, 또 다른 병원에서 새로운 노조가 만들어지고, 전공의·교수·봉직의 그리고 장기적으로 개원의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현장에서 의사들의 조직이 만들어질 때 대한민국 의사들의 실질적인 교섭력은 비로소 시작될 것입니다. 그리고 전국의사노조 준비위원회는 그 과정의 구심점이 되겠습니다. 

만들고, 돕고, 연결하겠습니다. 전국 곳곳에 의사노조를 만들고, 새롭게 만들어진 노조가 제대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흩어져 있는 의사노조를 하나의 전국적 네트워크로 연결하겠습니다. 그렇게 축적된 힘을 바탕으로 궁극적으로는 의사들이 정부와 의료기관을 상대로 대등하게 교섭하고, 스스로의 근로조건과 진료환경, 그리고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를 결정하는 과정에 당당한 당사자로 참여할 수 있는 실질적인 전국의사노조 체계를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그 첫걸음을 오늘 시작합니다. 우리는 오늘 기존 의사노조 및 의사 노동권 확립에 뜻을 함께하는 의사들과 함께 ‘전국의사노조 준비위원회’(위원장 - 대한병원의사협의회 주신구 회장, 공동준비위원장 - 김재현 동남권원자력의학원 의사노조 위원장, 노재성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노조 위원장, 유청준 전공의노조 조직전략본부장)의 출범을 선언합니다. 

2026년 9월 21일

대한병원의사협의회  전국의사노조 준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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