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는 지난달 9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소위원회에서 올해 10월부터 월경통, 안면신경마비, 뇌혈관질환 후유관리 등 3개 질환에 대해 한방 첩약을 건강보험에서 지원하는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 계획’을 시행하겠다고 밝히고, 7월 3일 건정심을 개최하여 확정할 예정이다.
보건복지부가 ‘첩약 급여 시범사업 세부안’을 공개하고 한방첩약의 건강보험 등재를 본격적으로 추진한다고 발표한 데 대해 대한신경과학회는 개탄을 금치 못하며, 즉각 철회할 것을 촉구한다.
특히 이번 시범사업에 포함되는 3개 질병 중 2가지(안면신경마비, 뇌졸중 후유증)는 신경과 질병으로 대한신경과학회는 더욱 우려가 크다. 이 두병 모두 발병 초기에 적극적 의사의 개입이 예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첩약급여화로 환자들이 적기에 치료 받지 못한다면 국민건강보험 재정만의 문제가 아니라 환자에게 돌이킬 수 없는 뇌손상만 남기게 된다. 콜린알포세레이트 등 뇌졸중후유증에 사용하는 약제를 유효성 검증이 부족하다고 선별급여 80%로 적용한다고 하는 이때, 유효성 검증이 부족한 정도가 아닌 아예 없는 첩약을 뇌졸중후유증에 급여화 한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 할 수 없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에는 원칙이 있다. 안전성과 유효성이 입증된 행위나 약제들 중에서 비용효과성과 사회적 요구도에 따라 우선순위를 정해 시행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방 첩약은 어떠한가? 의료계가 수없이 강조해왔지만 한약재 자체의 독성, 재배 및 유통과정 중에 발생되는 오염물질과 독성물질, 현대 의약품과의 상호작용 등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크며, 유효성도 검증된 적이 없다. 한마디로 ‘근거가 없는’ 치료법이다.
건강보험공단의 ‘첩약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위한 구축기반 연구’ 보고서에서도 첩약의 안전성, 유효성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가 제시돼 있지 않았다. 대한한의사협회는 ‘급여화가 된다면 한약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입증한 것’이라며 앞뒤가 바뀐 어처구니없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처럼 건보공단과 한의계 모두 한약의 안전성, 유효성을 입증할 방법이 없음을 인정하고 있다.
안전성과 유효성이 미검증된 첩약의 위험성을 누차 경고해왔는데도 이를 무시하고 급여화를 추진하겠다는 것은 국민건강 보호에 역행하는 것이고 건강보험제도를 문란케 하는 행위다.
이 사실을 우리 국민들이 모를 것으로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성분 함량 재료 원산지 등 정확한 정보조차 알 수 없는 채로 번번이 부작용을 경험하기도 하고, 먹다 남은 약을 버리는 등 한약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신은 날로 깊어지고 있다.
‘(사)소비자와함께’가 실시한 한약 소비자 대상 조사에 따르면, 처방받은 한약을 모두 복용한 경우는 25.8%에 불과했으며, 한약의 성분·원산지 표시 의무가 필요하다는 응답이 92.8%에 달했다. 이는 1조 원 이상의 건강보험 재정이 소요되는 한방첩약 급여화의 가성비에 대한 고려가 필요함을 강력히 시사하는 대목이다.
건강보험 보장성은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직결되는 필수의료 중심으로 점진적으로 확대하고, 그 우선순위도 직역 간 보험재정의 배분이나 보장성의 범위에 대한 상대적 비교가 아니라 국민의 생명과 건강이 기준이어야 한다.
대한한의사협회는 한방첩약 급여화 시범사업 추진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자, 기다렸다는 듯이 물으나마나한 시범사업 추진 여부에 대한 회원 투표를 통해 회원 민의를 수렴하겠다고 뻔뻔한 계획을 밝히는 촌극까지 빚으며, 보건복지부와 함께 의료계를 우롱하고 있다.
한의계 요청에 대하여 긴급 처방으로, 원칙을 어기면서 1조 원 이상의 건강보험재정을 허비하고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뒷전으로 내몰겠다는 것인가?
보건복지부와 대한한의사협회는 국민건강에 도움이 되기 위해 어떤 보건의료정책을 설계하고 시행해야 할 것인지 심각하게 되돌아보길 바란다.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책임지고 있는 대한신경과학회는 한방첩약 급여화 시범사업을 국민건강에 대한 중대한 위협으로 규정하고, 의료계와 국민의 염려와 충고를 무시한 채 이를 계속 밀어붙인다면, 우리는 의료계의 총의를 모아 국민의 뜻을 받들어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게 대응해 나갈 것임을 다시 한번 분명하게 밝힌다.
2020. 7. 3
대한신경과학회
